[좋은글] 농담 – 이문재

 

농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재 –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은 발견된다.

지극히 작고 하잘것 없는 일에서 사랑하는 마음은 더 깊어지고 간절해진다.

노을 지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옆에 있었으면 하고 나를 떠올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항상 종이 되기만을 바라온, 종소리를 내기 위하여 종메의 공통을 무시한 나를, 누가 과연 떠올릴 수 있을까.

종메가 없으면 종은 종소리를 낼 수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종이 되기만을 바란다.

그저 자기 아픈 것만 생각한다.

– 정호승 엮음, 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 中에서

[랜덤하우스중앙] 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 – 정호승 엮음

 

#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

내게 있어 정호승 시인의  시집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처음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첫눈오는날 만나자>라는 설레임이 가득한 시였다.

한동안 안도현 시인의 시로 저자를 잘못 표기하기도 했었는데, 같은 교무실 선생님의 시선집에서 뜻밖에 정호승 시인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저자에게 한참을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었다. 그 뒤에 안 사실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동일 제목의 시를 두편이나 짓고 있으셨다.

또다른 동료 선생님의 책상에서 발견한  멋진 캘리그래피로 쓰여진 <풍경달다>라는 시는 마음 한 구석에 큰 울림을 주었고, 

<수선화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는 힘들때마다 마음속에서 힘을 보태어 주는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다.

이 시집은 정호승 시인이 시인들 스스로 위로받고 위안하는 시들을 엮었다고 한다.

엮은이의 머릿말을 옮긴다.

이 시집속에는 시인들 스스로 위로받고 위안하는 시들이 별밤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우리의 삶을 세세하게 드러내 눈물이 반짝이기도 하고

그 눈물을 극복한 건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 시들을 통해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단한 삶

위로받으시고 평화스러우시길 바랍니다.

오늘 밤 별들이 따뜻한 것은

가슴에 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채] 수선화에게


# 수선화에게

Coffee Break.

제가 좋아하는 시선집 중 한권인 이 시집은 정호승 시인의 특별한 작품들이 다수 실려 있는 시선집입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한동안 시인의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해 여러 다른 시인의 이름을 적어야 했던 작품인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작품이 실려 있기도 한 이 시선집은 마음의 쉼이 필요한 때 제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나들이길에 챙겨가는 몇 안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2019.02.06.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