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57. 이별이었구나 – 이병률

 

#57. 이별이었구나.

어느덧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가 되었다. 개와 마지막으로 따뜻한 인사를 나눴다. 주인이 돌아오면 내가 해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보살펴줄것이었다.

내가 떠난 다음 날인가, 후배 부부는 돌아왔고 며칠 후,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개의 안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개가 말 잘 들었지요? “
“그럼, 너무 착해서 아무 문제 없었어.”
“근데 선배가고 돌아와 보니 마루에다 먹은 걸 토해놨더라구요. 챙겨준 사료는 건드리지도 않았구요.”
“아니, 왜? 나 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디 아픈 거야?”
“아뇨. 선배 여기 올때 큰 여행가방 가지고 왔을 거 아니에요? 떠날 때는 큰 여행가방 들고 나가셨을 거구요. 개가 여행가방에 민감해요. 정들었는데 떠나는 걸 알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나봐요.”

-인용. 이병률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중에서

 

[달]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아, 이별이었구나.

나는 돌아와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느라
한 번도 뒷일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는데 이별이 아팠구나.
미안하다.
나, 이토록 텁텁하게 살아서. 정말 미안하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음식에다 감정을 담는 것인데
하물며 나라는 사람, 이렇게 모른척 뻣뻣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 이병률 시인의 에세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중에서

[달] 내 옆에 있는 사람 – 이병률

 

# 내 옆에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새에게도 나무에게도.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간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별것 아닌 풍경이고 시간이라 해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사람이 그래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사람
나에게 그만큼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물이 닿은 글씨처럼 번져버릴까, 혹여 인연이 아닐까 나는 목이 마르고 안절부절입니다.
부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
내가 밑줄 친 사람이 되어 주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히 당신에게 그어놓은 그 밑줄을 길게길게 이어갈 것입니다.

– #. 매일 기적을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

 

<이병률> 사람이 온다

사람이 온다 – 이병률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훝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앞들을 메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 인용.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중에서
– Reflection on the Thames Westminister / 존앳킨슨그림쇼
– 127cm x 76.2cm / 1880 / 리즈미술관 Leeds Art Gallery / 영국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