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선택을 한다는 것의 의미

비 내리는 날

#선택을 한다는 것의 의미

비가 내리던 날의 교정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창 밖으로 시원스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손에 꼭 부여잡은 커피잔의 온기를 찾아 더듬거려갔던 내 손가락의 움직임들…

라디오에서 흘려나오는 음악소리에 춤을 추듯 내리던 빗방울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었었답니다.

비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비가 오는 날은 분위기가 한껏 들떠 수업을 했던 모습에 학생들의 당황스러운 표정들이 함께 어우려져 제 기억속의 한 장면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 한해, 저에게는 참으로 많은 변화의 모습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해를 고민하여 준비하여 온 일정들이 하나 둘 그 첫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는 순간들에 갑작스레 불안감들이 밀려오는 것은 왜 일까요.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인생 경험때문인것인지…

다시 시작한다는 것…..

그 시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뿌듯하고 뭔가 새로움이 가득한 말인데…왠지 가슴 한 곳은 막막한 불안감으로 가득합니다.

오늘 이 순간, 비가 내리던 날의 창밖 정경이 그리운 것은 그 날의 따뜻한 분위기와 가슴 가득 채워졌던 행복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이겨내려 합니다.

학생들에게 항상 얘기한 것 처럼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나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소중한 나의 삶의 매 순간 순간을 진심을 다하여 살고 싶습니다.

많이 힘들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고민들에 휩싸여 있는 모든 분들께 … 우리 힘을 내자는 말을 전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전 가까운 이에게서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꼭 움켜쥐고서는 인생에서의 성공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그 결말이 행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이 큰 것인지….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자각할 수 있다면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며 저의 선택에 혹시나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 돌아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답니다.

고마운 이의 충고를 감사히 받아 안으며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 오려 합니다.
한달 정도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시간이 흐른뒤…

다시 찾은 공간속에는 보다 환한 웃음을 내어 짓는 여유와 마음가짐을 갖는 이로 서 있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항상 행복하세요.

2004.7.3.
따뜻한 비

[에세이] 겨울이 들어서는 길목에서…

#겨울이 들어서는 길목에서

어느새 가을이 다 가고 하이얀 겨울이 성큼 다가서려 하고 있네요.
이번 가을에는 뭘 할까 하며 계획만 세웠던 것 같아 지나간 시간이 아쉽기만 하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가을에 어떤 추억을 담아 두셨나요?

이번 겨울방학에는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난 모습들을 되돌아 보려 합니다.
늘 언제고 정리하려 했던 창고속의 지나간 추억들을 다시 꺼내어 보며 책과 작문집 그리고 여러 가지 물품들을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어제는 편지함을 정리하다가 한참 동안을 편지를 읽고 있었답니다.
어찌나 재미있고 고마운 편지들이었던지…..

살아가면서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자꾸 현실속의 문제들로 좁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조금은 더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할 듯 싶습니다.

예전의 내 자신이 될 수야 없겠지만 그때의 우리들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젊음은 아직도 제 마음속에 가득하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10대의 젊은 학생 여러분….
여러분들의 푸른 꿈과 세상에 대한 부푼 희망을 절대 잊거나 버리지 마세요…

여러분들에게 펼쳐진 세상의 길은 아직 충분한 시간과 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올 겨울…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보다 많은 순간들이 뜻깊고 보람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4.7.3.
따뜻한 비

[에세이] 프로페셔널의 조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의 분위기를 맘껏 누리면서 책을 보는 하루!
얼마만이었을까
Perter F. Drucker 교수님의 “프로페셔널의 조건 (원제: The Essential Drucker (Vols.Ⅰ- Ⅲ) )를 읽으면서 정말 흥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Drucker 교수가 말하듯 지식노동자의 자기 실현관리는 보다 철저하고 효율성있는 시간관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시간의 희소성이 얼마나 값지고 또 무서운 것인가를 느낄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근래들어 나에게 있어 나타나는 두드러진 변화라면 책을 읽는 양과 속도의 변화를 들 수 있겠다.
일주일에 한권 이상의 책을 반드시 읽겠다는 나의 다짐이 아직 유효하게 적용,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발맞춰 인터넷 웹디자인 방면에서의 노력이 조금씩 그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을 느껴가고 있다.
차츰 차츰 익숙해져 가는 내 생활의 패턴들 속에 전문적 지식인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채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생각의 단편성을 제거하고 보다 다양한 사고들을 접하는 노력을 꾸준하게 기울여 나가야 한다. 또한 최대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연속적 시간 관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
세계사적 흐름을 보는 거시적 안목이 삶의 큰 바탕이라면 현재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많은 생각들을 일관된 사고 체계속으로 정렬시킬 수 있는 미시적 안목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줌을 알아간다.
다양한 만남과 생각들 그리고 나의 주변을 채우는 수많은 또 다른 객체들…
그 하나하나의 의미들에 대해 내가 좀더 솔직하게 다가설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을 수 있게 되기를 나는 소망하고 있다.

드러커 교수는 자신의 어릴적 추억을 꺼내어 놓는다.
“어릴적 나의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그 질문은 나에게 진정 충격이었고 40이 넘어서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지만 진정 그 당시에는 하나의 충격으로서 다가섰다.”

그 질문이란 이것이다.

나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종교 과목을 배웠는데, 그 선생님은 진실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어느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학생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너희들은 죽은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물론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50세가 될 때까지 여전히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드러커 교수는 피리글러(Pfliegler) 신부님과 같은 도덕적 권위를 갖춘 사람을 인생의 초반부에 만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살아가는 동안 내내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해 주었다고 한다.

“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철저하고 충분한 노력과 마음을 갖추려 한다.
오랜만에 찾은 중앙도서관의 체취가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의 의지를 깨우게 하는 저녁이다.                                                            

2004.7.4.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프로페셔널의 조건 - 피터 드러커

 [Adieu 2004] DFLHS 21기 제자님들에게…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 꼭 살아 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 도종환,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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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ieu 2004 ] 우리 제자님들에게… !!!

합격의 설레임을 안고 처음으로 들어선 대원외고에서
낯선 선생님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수업을 듣던 너희들이
벌써 한해가 지나고 어엿한 2학년이 되는구나.

첫 중간고사를 치르며 떨리는 마음에 펜을 몇 번이나 놓쳤다는 너희들이 마지막 기말고사에서는 너무나 능숙하게 답안을 작성하는 여유를 보여주었지.

뭐든 처음은 낯설고 힘들 게 마련이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너희들은 지금 이 순간 여기까지 온 거란다.

22기 신입생 선발시험을 함께 하며
‘벌써 우리가 선배야..!!! ‘ 하던 너희들…

그래,
이제 너희들은 당당한 2학년 선배가 되는거란다.

마냥 대원의 어린 막내가 아니라
동아리 선배로, 책임있는 3학년의 후배로 너희들의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는 거란다.

2005년.
너희들의 보다 더 책임있고 멋진 모습을 선생님에게 보여주렴.

우리 21기 제자님들은 모두 잘 할 수 있을거라 선생님은 믿는단다.

멋지고 자신에 찬 모습으로
스스로의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대원인으로 모습으로
멋진 이 시대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렴.

21기 제자님들….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 2004년 DFLHS 21기 제자들에게…
– 황인중 선생님이…

– 2004년 12월 31일(금)

[에세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 창동고 제자들에게…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 꼭 살아 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도종환

TO. 창동고 제자들에게…

아침 일찍 출근해 교무실 불을 켜며 창밖으로 내다보던 눈내린 창동고등학교 교정을 기억해봅니다.
아직 아무도 발을 대지 않은 운동장을 바라보며 축구를 하며 뛰어다니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처음 보는 얼굴…. 낯선 호기심으로 다가선 선생님에게 여러분들은 너무나 많은 기대감과 사랑을 나누어 준것 같습니다. 함께 웃으며 시작한 2학년 3반, 4반, 5반, 6반, 7반, 17반, 18반 학생들…그리고 특기적성 2학년 C반, 2학년 8반, 9반 학생들… 모두 고맙고 감사합니다.

4년여의 시간을 선생님이라는 신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웃는 날도…눈물짓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창동고에서의 기억은 선생님에게 웃음과 행복한 마음만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함께 뛰었던 건강마라톤대회와 창동고 2회 해등제 기간에 열심히 준비해준 게임부 학생들… 그리고 교무실로 찾아와 열심히 질문하여 주던 학생들…

모두 오래도록 선생님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거라 믿습니다.

창동고 학생여러분…
올해도 유능하시고 인자하신 창동고 선생님과 함께 여러분들의 소망하는 진로와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새로운 곳에서 또다른 도전을 시작하려합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힘차고 활기차게 도전해 나가는 멋진 창동고등학교 학생여러분들이 되실 것임을 믿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가짐으로 학교 생활 잘 하기를 선생님이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여러분 안녕~

– 2004년 2월 12일 (목)
– 사랑하는 창동고 제자들에게…
– 황인중 선생님이…

비 오는 거리

# 비 오는 거리

나에게 있어 여름은 아주 반갑고 즐거운 계절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모두가 좋은 계절이지만, 내가 유달리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름에 만나는 ‘비오는 거리’가 다른 계절의 그것과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만큼 반가운 방문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봄비가 새로운 만남의 설레임과 같다면 여름비는 원숙한 사랑의 믿음이랄까…

가을비가 실연의 쓸쓸함을 적시고, 겨울 비가 차가운 고목을 적시는 옛 사랑의 아픔에 대한 기억에 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이같은 비유는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비유이다.

다만, 나의 기억속에 담겨있는 비(雨)에 대한 정경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영상과 어우러져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을 얘기하고 싶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비오는 날에 텁텁한 버스안의 공기와 도로를 지나치는 차에 의해 언제 튕길지 모르는 흙탕물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속에는,

친구들과 함께 우산도 없이 비오는 날 함께 뛰어다니던 해맑디 맑은 기억이 더 신선하고 새롭게 먼저 다가서고 있다.

누가 먼저 뭐랄것도 없이 친구집 앞에서 친구들을 불러내어 마을 회관에 모여 술래잡기며 뜀박질을 하던 기억,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서 30분 넘게 가야 했던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달리던 기억…

가끔씩 지나쳐 가는 버스에 의해 시원하게 튀기는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크게 웃기만 하던 기억….

그 소중한 기억들이 나의 어릴적 童心과 어우러져 비오는 날의 즐거움을 갖게 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내가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덧대어지고 보태어져서

안양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농촌 봉사활동을 갔던 기억과 아스팔트 위를 시원스레 내달리던 그때의 사진들 그리고 대학교 친구들과 지리산을 오르며 비에 흠뻑 젖어 고생했던 기억들과 함께 즐거운 기억의 여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차츰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에게도 가끔씩 비(雨)는 더 이상의 즐거운 만남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양복을 입게 되면서 우산없이 출근한 날, 비오는 하늘을 내다보는 마음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창밖으로 내리는 비(雨)를 내다보며, 한 손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내다보는 운동장 정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행복한 시간이다.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비오는 교정(校庭) ,
내가 더 활기차고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지금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2004년 6월…
                                                                                                – 작문노트 2004

[에세이] 미술관 가는 길

미술관 가는 길

전철역을 나오는 내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제 세네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재롱어린 표정을 사진에 담고 있는 아이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의 사진을 찍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 듯 아빠를 바라보며 한껏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멀찌감치 서 있는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이 둘의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시킬 듯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일이었지만 과천 대공원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가득 주차되어 있어 방학이라는 시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방학을 맞아 10대들은 요즘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일명 디카)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놀이 공원을 찾아온 이들도 있었겠지만 미술관에 들러 자신들의 모습과 함께 미술작품을 찍는 학생들의 얼굴이 참 신선하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다정한 가족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난 미술관 표지판을 따라 짐을 챙겼다.

미술관까지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갈수도 있었지만 ‘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걸아가면서 새삼 여름 날씨의 무더위를 실감할 때 즈음 미술관 입구까지 늘어선 자동차들이 나의 시선을 압도하며 다가섰다.

오늘 관람 학교 : 대명중학교
볼프강 라이프 전시전 / 곽덕준 전시전

얼마전 관람했을 때  “사유와 감성의 시대”라는 테마로 진행되었던 전시는 이미 오래전에 끝나고 새로운 주제와 인물로 미술관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늘 그렀지만, 미술관은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면서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안에 많은 변화의 모습들이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이번 방문에서는 미술관 중앙의 백남준씨의 비디오 아트 작품의 핵심 매체인 TV가 바뀌어 있었다. 80년대 삼성제품 마크가 생생히 찍혀 있던 검은톤의 TV 세트가 은색의 “명품 Plus” 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제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티스트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의 변화가 있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미술작품 이해에 어려움을 많이 갖는 나와 같은 비전공자에게는 그저 작품의 TV 세트가 바뀌었다는 부분만이 차이점으로 다가설 뿐이니까. 아직까지도 나에게 아티스트의 작품은 메시지를 해석하기 보다는 느낌을 전해받는 수준인 것이다.

언젠가 교무실에 앉아 한젬마님의 ‘그림 읽어 주는 여자’라는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동료 선생님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그림이 좋은거예요 아니면 미술관 가는 길이 좋은거예요? ”

  나의 어리석움을 알아채신 것일까….

솔직히 난 그림을 보는 것보다 그림을 보러 가는 이른바 ‘미술관 가는 길’이 더 마음에 든다.
벌써 여러 해 미술관의 그림들을 보아 오고 있지만 딱히 나에게 해석이 되어 다가서는 그림들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화폭의 그림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전해 받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술관을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해마다 바뀌어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소중한 기억이 되어 가고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미술관 주변의 경치도 아름답고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함께 어울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정어린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을 향하며 걷던 나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었던 기억의 잔상들이 소중하게 남아 있음을 안다.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고 즐거운 이와 함께 한 시간도 있었으며 혼자만의 고민에 대한 결정을 얻어야 하는 시간도 있었던 기억의 잔상들 말이다.

그렇다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이 나에게 항상 명쾌한 답안을 제시하여 준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갖을 수 있게끔 생각의 공간을 미술관은 제공해 준 것이리라 생각된다.

옛 시골길을 걷다보면 길가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 넓은 들마루가 놓여 있는 곳을 지날 때가 있다.
뜨거운 여름,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 이에게 이 커다란 나무 밑이 제공해 주는 그늘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청량제의 구실을 해 준다.

삶의 피곤과 힘든 여정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줌으로서, 다시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샘솟게 해 주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의 그늘과 같은 존재.

언제든 찾아 올 수 있고 그때마다 묵묵히 한마디 불평없이 나를 반겨주는 고향 친구같은 존재처럼 나에게 있어 미술관은 바로 시골길 옆의 은행나무 그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

사진을 찍던 아이들이 단체로 미술관을 나서고 있다.
아마도 단체 관람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중학교 학생들인 것 같다.

저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자리 잡아가고 있을까-

이제 나도 노트북을 접고 가족이 기다리는 공간으로 발길을 나서야 할 듯 싶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도 마음에 들지만 환하게 웃음을 내어 짓는 아이들의 모습속에서 미술관이 주는 여유를 맘껏 누린 것 같아 행복한 시간이다. .(*)

                                                            2003년 8월 1일 오후 4:02
                                                            과천 현대미술관 앞 잔디 발코니에서…

[샘터] 인연 – 피천득

 

마음이 답답하거나 무언가 꼬여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인사동 길이 아닌가 싶다. 종로의 영풍문고에 들러 발걸음이 내딛는 대로 걷다보니 어느새 인사동 길목에 들어서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수필가인 피천득님이 얘기하는 ‘인연’이 꼭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내게 있어 인사동 길은 내가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인연’이지 싶다.

대학시절,
후배들과 처음으로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라는 멋진 찻집에 들러 처음으로 인사동을 알게 된 것이 첫 만남이라면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사회인으로서 직장동료, 선배들과 비오는 인사동 어느 길목에서 술잔을 기울였던 것이 두번째 만남일 듯 싶다.

해가 갈수록 인사동을 찾는 기회는 줄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가고 싶은 곳으로, 함께 하고 싶은 곳으로 기억에 남아 내 기억속의 오아시스가 되어 버렸다.

아사코와의 세 번째 만남에 대해 시간과 세월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의 마음을 써 내려간 수필가 피천득님의 ‘인연’이 나의 시선속으로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 같다.

내게 있어 인사동 길은, 세번을 만나도, 아니 그 이상을 만나도 항상 정답고 따뜻한 기억이어서,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과 같이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더 정겨워질 것 같다.

– 2008년 6월 8일(일)
– 다시 찾은 인사동 길에서…
– 인중

”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늘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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