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예전에 읽었던 스티브잡스의 업무 이야기를 다룬 책이 기억에 나 서재에서 다시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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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본 에티켓이라 할 수 있는 약속과 신의에 대해 스티브잡스가 보여주는 악행(?)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잡스의 성공적 경영 성과는 비즈니스 세계의 치열한 약육강식 현장 속에서 우리 주인공이 얼마나 뛰어난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였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 경제전문지 코퍼릿 나이츠(Corporate Knights)가 전 세계 3000개 기업의 데이터를 취합해 평가하는 글로벌 100대 지속가능기업에 애플이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스티브잡스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애플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또한 그가 매년 MacWorld 컨퍼런스에서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많은 이들에게 잡스 매니아를 만들정도였으니
그가 갖고 있는 경영능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찌보면 인간미가 없는 매정한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에게서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장에서 보여주었던 감동깊은 졸업식사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것은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손석희, 2002년 <월간중앙> 인터뷰 기사에서 인용
P.S.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깨달음과 삶에 대한 끝없는 성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