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산책] “시간이 많은 줄 알았어요.”

 

붉은 문 :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마주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연구


 내가 삶을 선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결정되어진 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인지…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고 선택들은 합쳐져 결과가 되어버린다.
삶을 하나의 무대로 놓고 있는 이 삶의 연출자가 궁금하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의 자유의지란 어디까지인가?
분명한 것은 이 삶이라는 것이 반드시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과연 무엇을 마지막으로 보고 갈 것인가.
웃을 것인가 울어야만 할 것인가.. 회환이 몰려올지 모른다.

어이없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아니라 형광등이나 혹은 병원의 천장을 보며 임종을 맞는다.
가야만 하고 보내야만 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해야 하는가.

여기 아주 비극적인 운명의 남녀가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자와 그런 사실에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는 남자.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고자하던 그 남자는 어이없게도 사고를 당해 눈만 살아있는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 그런 남편을 두고 마침내 자신이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분노하고 체념하고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위로하듯 바라보며 작별을 해야 하는 순간, 삶과 죽음의 얇은 경계가 서로 엇갈린다.

이 작품에서 여자는 유일한 한마디를 남겼다.

 “시간이 많은 줄 알았어요.”


 – 인용글 및 작품 : 이진준

2008 젊은 모색 : 08.12.05 – 09.03.08
YOUNG KOREAN ARTISTS, I AM AN ARTIST.
국립현대미술관 제 1, 2 전시실 + 중앙홀

 

P.S.

미술관 전시실에서 한참동안을 보고 또 보았던 영상…

집으로 향하는 동안 말없이 운전만 하는 나를 발견한 하루.

넌,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거니?

[좋은글] 인연설 – 한용운

 

사랑하는사람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때문입니다.
그것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수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없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 말고
애초롭기까지 한 사랑 할 수 없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 만해 한용운 –

[좋은글] 곁에 있어 줄 사람

– 글 인용 :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 , 앨리스 출판
– 이미지 : 월터 랭글리,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 1894

[좋은글]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 내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잔이다. “

 – 이미지 및 글 인용,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中에서 


<이성부> 봄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좋은글] 지금, 여기, 왜

법륜, 지금 여기 깨어있기

 

우리는 늘 현재의 자기 직분을 놓칩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러 와 놓고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러 왔는데 그걸 방임하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준 사람을 욕하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

이 세 가지에 늘 깨어있으면
삶에 후회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 인용글. 법륜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 중에.
–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 한정식 작가님의 ‘고요’ 시리즈 중

 

[좋은글]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 이기주

황선화 작가의 '나비의 사랑'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유독 맛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
대학 시절 학교 쪽문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던 칼제비의 푸짐함이 그립고,
이거 다 비워야 키 큰다”며 할머니가 만들어준 콩국수의 맛도 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런 음식 곁엔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 인용.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2017.08.19.

오랜만에 누님 개인전을 다녀오는 외출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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