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기다림”이라는 단어만큼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있을까?

연인을 기다리다. 시험결과를 기다리다. 첫눈을 기다리다. 편지를 기다리다. 친구를 기다리다. …

이 모든 문장들 속에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지만, 그 기대가 깨졌을 때 찾아올 아쉬움과 절망감 또한 담겨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기다리는 고도(GODOH)는 1막과 2막이 끝나도록 오지 않는다.
고도가 올때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나 하듯 쉼없이 이어지는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엉뚱하기도 하고, 단절된 대화이기도 하고, 철학적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무거운 주제인 경우도 있다.

기다리는 이가 느끼는 불안감, 공포심, 낭패감, 허무감, 상실감, 지루함, 애절함, 흥분과 기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베케트는 어떤 설명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고도가 누구인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란 말인가-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가 –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독자는 두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고도를 기다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그들의 기다림의 목적은 무엇일까?

고도를 만나면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일까 –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인지, 수많은 화두를 던져주고는 독자에게 답은 각자 찾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읽을수록, 다시 생각해 볼수록,
생각이 더 많아지는 책이다.

– 2009.01.31.
– 서울시교원연수원에서.
– 인중.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드미르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왜?
블라드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 1952년 프랑스어판으로 첫 출간된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h)’는 사뮈엘 베케트에게 1969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수여하게 한 책이다.

[창비]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엄마가 네 앞에서 집을 치울 때였다. 어느날부턴가 엄마는 방에 떨어진 수건을 집어 걸었고, 식탁에 음식이 떨어지면 얼른 집어냈다. 예고 없이 엄마 집에 갈 때 엄마는 너저분한 마당을, 깨끗하지 못한 이불을 연방 미안해했다. 냉장고를 살피다가 네가 말려도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엘 나갔다.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창비(2008)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 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샘터]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 정채봉

만 남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히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고려대학교출판부] 젋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내가 당신한테 또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을 이렇게 위로하려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p.91

– Rainer Maria Rilke,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

 

 

Coffee Break.

비가 내리는 휴일 오후,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젊은 시인에게 릴케가 들려주는 감동과 위안의 글들을 읽어내려갑니다.

2014.05.25

따뜻한 비

[샘앤파커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삼십대가 된 어느 봄 날,
내 마음을 바라보다 문득 세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셋째는,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니 제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하고 사십시오.
생각만 너무 하지 말고 그냥 해버리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한 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맙시다.

P. 127~129


Coffee Break.


순간순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 혜민스님


2012.9.3

“휴식”을 선물받다.

대원외고에서 仁重

 

[중앙books] 거기, 우리가 있었다. – 정현주

 ‘우리’라는 말에 웃던 날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와 나를 ‘나와 너’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라고 부르던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마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제 너와 나는 연결되었고 너의 많은 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뜻 같아서 좋았습니다.

우리’라는 이름 아래 같이 있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고단했으나 평온했고, 불안했으나 안심이 되었던 순간들.

고마웠어요. 저에게 ‘우리’라는 말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랑의 고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정현주 에세이  ‘거기, 우리가 있었다’ 중에서 

 

 

[갤리온]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이종선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이종선

나는 책을 깨끗하게 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가급적 표지를 손상시키지 않으려 하는 편이고, 책 속에 밑줄을 긋거나 낙서를 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편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의 속지 첫장에 서평을 짧게 쓰는 편인데, 그나마도 요즘은 그냥 책을 다 읽은 날짜와 장소를 써 둘 뿐이다.

내가 이렇게 나의 책 읽는 습관을 쓰는 이유는

어제 서점에서 발견한 책에 앞서 말한 모든 습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종선님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책은 시종일관 나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며 어딘가에 끊임없이 메모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근처 손닿는 거리에 있는 종이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쯤부터는  책의 하단을 접어 두어야 했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어 연필을 들고 살짝 느낌표를 표시했고, 마지막에는 밑줄을 긋는 나를 발견해야 했다.

이 문장을 꼭 기억했다가 누군가에 전해주어야지 하는 나의 작은 욕심에서 출발한 나의 작은 표식들은 책 중반을 넘어가며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난 결국 이 책 자체를 누군가에게 선물하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는 기쁨이라는 것이.

대학시절, 신경숙님의 소설에 나타난 1인칭 ‘나’라는 화법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면,

졸업 후 한젬마님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진솔한 감정이 심정적 공감을 이끌어주었고,

절필 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공지영님의 <수도원기행>과 동료 선생님이 선물해주신 이병률님의 <끌림>은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 다시 이종선님의 따뜻한 감성이 나의 심금을 울리며 다가선 것은 정말 고마운 만남일 듯 싶다.

늘 주변에 있는 분들께 좋은 책을 추천해 주기를 부탁하고는 한다.

딱히 인터넷 서평만으로 책을 구입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이는 어디까지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나에게 너무 잘 맞는 책을 발견하는 날에는 아주 마음이 맞는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처럼 기쁘고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 애착이 가는 것을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일들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이다.

아마도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정리하자면 이 책의 첫장에 있는 어린왕자 이야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일요일 아침,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만지작 거린다.

통화연결음이 끝나고 오랫동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주 환한 목소리로 첫 인사를 해야겠다.

오랜만이지?

– 2009 따뜻한 비.

 

야생동물들이 우글거릴 것 같은 아프리카 속담중에 이런 게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그 말은 우리의 삶에도 최선의 답이다.
– p.281

[에이지21] 스티브잡스의 신의 교섭력 – 다케우치 가즈마사

 

# 스티브잡스의 신의 교섭력

마크 페이퍼매스터 애플 부사장이 사직했다는 소식이다.

그의 사직이 아이폰4 안테나게이트에 따른 책임을 진것이라는 분석과는 다르게

 “페이퍼매스터는 IBM 출신인데 IBM은 안테나 기술이 없다.”

는 글리처의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마셜의 이야기처럼

이번 사직은 스티브잡스와의 불화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마침 예전에 읽었던 스티브잡스의 업무 이야기를 다룬 책이 기억에 나 서재에서 다시 꺼내어 본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본 에티켓이라 할 수 있는 약속과 신의에 대해  스티브잡스가 보여주는 악행(?)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잡스의 성공적 경영 성과는 비즈니스 세계의 치열한 약육강식 현장 속에서 우리 주인공이 얼마나 뛰어난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였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 경제전문지 코퍼릿 나이츠(Corporate Knights)가 전 세계 3000개 기업의 데이터를 취합해 평가하는 글로벌 100대 지속가능기업에 애플이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스티브잡스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애플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또한 그가 매년 MacWorld  컨퍼런스에서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많은 이들에게 잡스 매니아를 만들정도였으니

그가 갖고 있는 경영능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찌보면 인간미가 없는 매정한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에게서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장에서 보여주었던 감동깊은 졸업식사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것은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외로운 천재 잡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마쳤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끊임없이 갈망하라, 늘 바보가 되어서 끊임없이 배워라.)

 2010.08.10.

황인중

[토네이도] 손석희 스타일 – 진희정

손석희 스타일

 

최선을 다해서 선택을 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정당한 방법으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 손석희 –

 

 

손석희라는 사람의 가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손석희, 2002년 <월간중앙> 인터뷰 기사에서 인용

P.S.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깨달음과 삶에 대한 끝없는 성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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