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술관 가는 길

미술관 가는 길

전철역을 나오는 내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제 세네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재롱어린 표정을 사진에 담고 있는 아이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의 사진을 찍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한 듯 아빠를 바라보며 한껏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멀찌감치 서 있는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이 둘의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시킬 듯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일이었지만 과천 대공원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가득 주차되어 있어 방학이라는 시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방학을 맞아 10대들은 요즘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일명 디카)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놀이 공원을 찾아온 이들도 있었겠지만 미술관에 들러 자신들의 모습과 함께 미술작품을 찍는 학생들의 얼굴이 참 신선하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다정한 가족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난 미술관 표지판을 따라 짐을 챙겼다.

미술관까지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갈수도 있었지만 ‘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걸아가면서 새삼 여름 날씨의 무더위를 실감할 때 즈음 미술관 입구까지 늘어선 자동차들이 나의 시선을 압도하며 다가섰다.

오늘 관람 학교 : 대명중학교
볼프강 라이프 전시전 / 곽덕준 전시전

얼마전 관람했을 때  “사유와 감성의 시대”라는 테마로 진행되었던 전시는 이미 오래전에 끝나고 새로운 주제와 인물로 미술관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늘 그렀지만, 미술관은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면서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안에 많은 변화의 모습들이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이번 방문에서는 미술관 중앙의 백남준씨의 비디오 아트 작품의 핵심 매체인 TV가 바뀌어 있었다. 80년대 삼성제품 마크가 생생히 찍혀 있던 검은톤의 TV 세트가 은색의 “명품 Plus” 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제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티스트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의 변화가 있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미술작품 이해에 어려움을 많이 갖는 나와 같은 비전공자에게는 그저 작품의 TV 세트가 바뀌었다는 부분만이 차이점으로 다가설 뿐이니까. 아직까지도 나에게 아티스트의 작품은 메시지를 해석하기 보다는 느낌을 전해받는 수준인 것이다.

언젠가 교무실에 앉아 한젬마님의 ‘그림 읽어 주는 여자’라는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동료 선생님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그림이 좋은거예요 아니면 미술관 가는 길이 좋은거예요? ”

  나의 어리석움을 알아채신 것일까….

솔직히 난 그림을 보는 것보다 그림을 보러 가는 이른바 ‘미술관 가는 길’이 더 마음에 든다.
벌써 여러 해 미술관의 그림들을 보아 오고 있지만 딱히 나에게 해석이 되어 다가서는 그림들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화폭의 그림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전해 받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술관을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해마다 바뀌어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소중한 기억이 되어 가고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미술관 주변의 경치도 아름답고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함께 어울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정어린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을 향하며 걷던 나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었던 기억의 잔상들이 소중하게 남아 있음을 안다.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고 즐거운 이와 함께 한 시간도 있었으며 혼자만의 고민에 대한 결정을 얻어야 하는 시간도 있었던 기억의 잔상들 말이다.

그렇다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이 나에게 항상 명쾌한 답안을 제시하여 준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갖을 수 있게끔 생각의 공간을 미술관은 제공해 준 것이리라 생각된다.

옛 시골길을 걷다보면 길가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 넓은 들마루가 놓여 있는 곳을 지날 때가 있다.
뜨거운 여름,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 이에게 이 커다란 나무 밑이 제공해 주는 그늘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청량제의 구실을 해 준다.

삶의 피곤과 힘든 여정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줌으로서, 다시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샘솟게 해 주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의 그늘과 같은 존재.

언제든 찾아 올 수 있고 그때마다 묵묵히 한마디 불평없이 나를 반겨주는 고향 친구같은 존재처럼 나에게 있어 미술관은 바로 시골길 옆의 은행나무 그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

사진을 찍던 아이들이 단체로 미술관을 나서고 있다.
아마도 단체 관람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중학교 학생들인 것 같다.

저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자리 잡아가고 있을까-

이제 나도 노트북을 접고 가족이 기다리는 공간으로 발길을 나서야 할 듯 싶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도 마음에 들지만 환하게 웃음을 내어 짓는 아이들의 모습속에서 미술관이 주는 여유를 맘껏 누린 것 같아 행복한 시간이다. .(*)

                                                            2003년 8월 1일 오후 4:02
                                                            과천 현대미술관 앞 잔디 발코니에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