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오는 거리
나에게 있어 여름은 아주 반갑고 즐거운 계절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모두가 좋은 계절이지만, 내가 유달리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름에 만나는 ‘비오는 거리’가 다른 계절의 그것과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만큼 반가운 방문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봄비가 새로운 만남의 설레임과 같다면 여름비는 원숙한 사랑의 믿음이랄까…
가을비가 실연의 쓸쓸함을 적시고, 겨울 비가 차가운 고목을 적시는 옛 사랑의 아픔에 대한 기억에 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이같은 비유는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비유이다.
다만, 나의 기억속에 담겨있는 비(雨)에 대한 정경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영상과 어우러져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을 얘기하고 싶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비오는 날에 텁텁한 버스안의 공기와 도로를 지나치는 차에 의해 언제 튕길지 모르는 흙탕물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나의 기억속에는,
친구들과 함께 우산도 없이 비오는 날 함께 뛰어다니던 해맑디 맑은 기억이 더 신선하고 새롭게 먼저 다가서고 있다.
누가 먼저 뭐랄것도 없이 친구집 앞에서 친구들을 불러내어 마을 회관에 모여 술래잡기며 뜀박질을 하던 기억,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서 30분 넘게 가야 했던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달리던 기억…
가끔씩 지나쳐 가는 버스에 의해 시원하게 튀기는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크게 웃기만 하던 기억….
그 소중한 기억들이 나의 어릴적 童心과 어우러져 비오는 날의 즐거움을 갖게 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내가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덧대어지고 보태어져서
안양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농촌 봉사활동을 갔던 기억과 아스팔트 위를 시원스레 내달리던 그때의 사진들 그리고 대학교 친구들과 지리산을 오르며 비에 흠뻑 젖어 고생했던 기억들과 함께 즐거운 기억의 여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차츰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에게도 가끔씩 비(雨)는 더 이상의 즐거운 만남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양복을 입게 되면서 우산없이 출근한 날, 비오는 하늘을 내다보는 마음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창밖으로 내리는 비(雨)를 내다보며, 한 손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내다보는 운동장 정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행복한 시간이다.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비오는 교정(校庭) ,
내가 더 활기차고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지금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2004년 6월…
– 작문노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