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Break.
제가 좋아하는 시선집 중 한권인 이 시집은 정호승 시인의 특별한 작품들이 다수 실려 있는 시선집입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한동안 시인의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해 여러 다른 시인의 이름을 적어야 했던 작품인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작품이 실려 있기도 한 이 시선집은 마음의 쉼이 필요한 때 제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나들이길에 챙겨가는 몇 안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2019.02.06.